< 4 > 종교와 신비의 베일

 

재림사무국싸이트를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바가 있다. 인간들 세상에 세대차라는 것이 있듯이 고차원 세계의 삶과 저차원에 사는 우리들의 삶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무척 어려운 내용들이라는 것이다. 그분들은 우리와 같은 수준의 삶을 체험했고 통과했다고 생각하고 또 우리의 마음까지 읽어내는 기술도 있다고 하는데 왜 그 문장과 내용들이 난해하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문제는 간단한 데 있을 것이다. 그분들은 종교적 관점에서 생각하고 또 우리도 종교적 심리 안에서 그분들을 우럴어보며 매달리지만, 그 종교적 심리 자체가 비과학적이고 상하의 수직관계로만 배웠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지금까지 종교에서 가르쳤듯이 종교를 신비라는 베일 속에 가두면 신도들은 눈먼 장님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원래 신비라는 단어는 이해할 수 없는 베일 뒤의 것을 뜻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우리 지구인들이 이 시대에 필히 배워야 할 상승, 진화, 깨어남이란 무슨 뜻인가? 그 신비의 베일을 벗겨야 한다는 것이고 과학은 그것을 가능케 만들지 않았는가? 성장하라고 하는데 신비의 베일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성장하라는 말은 이율배반이고 오직 충성만을 요구한다는 어감으로 다가올 뿐이다.

기독교의 가장 큰 약점은 지혜를 죄악시하는 교리가 있다는 것과 의미도 알 수 없는 흑백론이 오직 2분법적 사고방식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필자처럼 종교의 신비를 과학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논리도 교만이나 죄악으로 치부하며 얕보고 비난하는 것이다. 지혜와 사탄은 기독교인들의 가장 손쉬운 희생양 아닌가?

지혜와 그것을 인간교육에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사탄, 그 두 단어들과 개념에 대한 화살을 거두지 않는다면 21세기의 지성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진실로 지구인들을 가르치고 싶다면 그 두 주제, 즉 기독교의 아킬레스건과도 같은 지혜=사탄과 그 유래에 대한 보다 사실적이고 솔직한 교육에 힘써야 할 것이다. 21세기의 지구인들은 더 이상 양순하고 순진하기만 한 양떼가 아니고 신성이 무엇인가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픈 욕구에 차 있으며 또 그만한 실력도 갖춘 인류라는 것을 아신다면 말이다. 종교적 맹신에 의해 발생했던 수많은 전쟁들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또한 과학의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종교적 체질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필요불가결의 요소라는 것이 시대적 진리 아닙니까?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불임증의 여자여서 사라의 하녀였던 이집트 여자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았다. 이 시대를 위한 상징성을 찾자면, 이방인 국가인 한국에서 번성한 기독교가 새복음에 대한 이해가 더딘 반면 일찍이 지혜를 주장한 동양 철학/사상은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종교관에 먼저 눈뜨고 있는 것이다. 사라가 100세가 다 되었을 때 천사들의 방문을 받고 아들 이삭을 낳을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 그런 스토리를 아직도 기적이란 이름으로 세뇌시켜야 한단 말인가? 체외수정 혹은 시험관 아기였다는 사실을 사실대로 가르쳐야 한다면 성령감화와 거듭남이 어떤 현상인가도 과학적으로 설명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