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CENDED MASTER LORD BUDDAHA

 

Lord Buddha's gentle aura of compassion, wisdom and strength, embraces the planet and everyone on it. He sustains the divine spark of consciousness for the evolution of humanity. Lord Buddha unceasingly brings you back into the light of the divine in a very loving, gentle and unassuming way. Lord Buddha's energy is needed very much at this time to balance the energies of the human soul.

 

Colour- Maroon/Yellow
Chakra- Heart (4th)
Focus- Compassion
Symbol- Tree

  

 

주 붓다의 열정과 지혜와 힘의 부드러운 오라는 행성과 거기에 사는 모두를 감쌉니다. 그는 인류의 진화를 위한 의식의 신성한 불꽃을 지원합니다. 주 붓다는 당신을 쉬임없이 그리고 매우 사랑스럽고 부드럽고 추정할 수 없는 방법으로 빛으로 데려옵니다. 현 시점에서 주 붓다의 에너지는 인간 영혼 에너지의 균형을 위해 매우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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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붓다에 대해서 모르는 한국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분 호칭 앞에 붙은 라는 글자는 영어 Lord를 번역한 것인데, 6차원 이상의 에너지 레벨에 도달한 우주인들에게 붙이는 존칭이라고 한다.

아래는 이 시대의 고타마 붓다가 텔레파시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들이다. 2004년을 전후해서 호주와 콜럼비아 등 세계 여러 지역의 청중에게 텔레파시로 전달된 메시지들을 호주의 핸넥 제닝스라는 여성이 편집 출간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은하문명출판사가 마에트리아 대사와 붓다의 메시지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간했다. 아래는 그 책에서 인용한 것임을 밝힙니다.

 

, , 승은 불교라는 종교를 이루는 3대 기둥이다. 그러나 나 고타마 붓다는 원래 종교를 시작하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나는 영혼과의 하나됨, 즉 영과 물질 사이의 하나됨을 깨달을 수 있는 보편의 진리를 보여주기 위해 왔던 것이다....

각성해 있으므로 해서 모든 생명이 한 몸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들이 상승하여 영적인 세계의 일부가 됨으로써 결국은 근원으로 되돌아가게끔 운명지워져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 그것이 내 가르침의 목표였던 것이다.

인간은 의식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그 의식의 출발점인 신성으로 돌아가게끔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초보적인 구도자들을 위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붓다는 삼라만상의 본질적인 속성을 꿰뚫어보는 존재다. 불성이라고 부르는 것과 하나가 된 존재인 것이다. 불성은 또한 초월적인 신이라고도 부른다. 지구상에 육화돼 있는 동안에는 그 초월적인 신을 직접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여러분은 어떤 형상이나 언어, 교리, 이론을 넘어선 초월적인 신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런 도움을 주는 것이 곧 불성과 혹은 그리스도성으로 나타나는 상승된 의식(意識)인 것이다. 인간은 삼라만상이 그러하듯이 우주의 근원으로부터 나온 존재다. 그러므로 깨달은 존재로서의 붓다는 사실상 초월적 신에 대한 상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붓다는 전통적인 아버지의 역할에는 맞지 않다. 하지만 붓다는 초월적인 신을 상징한다. 서구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신의 어머니성을 무시하고 신을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곳의 무서운 아버지로 묘사한 유일신적 종교 때문이었다.....

 

붓다와 성스러운 어머니 신이 만났을 때 어둠의 세력은 패퇴할 것이다. 여러분이 신의 여성성을 이해했을 때 초월적 신의 속성도 이해할 수 있다. 붓다와 어머니 신성이 하나임을 알았을 때 여러분 안에서도 신성과의 하나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를 연습하듯이 개체적인 존재들의 마음 속에서 분리의식은 제거될 수 있는 것이다.

낙원으로부터 쫓겨났을 때부터 인성의 바탕을 이룬 분리의식은 신성의 낙원으로 돌아감으로써 제거될 수 있지만, 3차원적인 개체의식 속에서도 분리의식의 제거는 가능하다는 말씀이다. 자유의지를 선한 의지로만 사용하는 연습을 통해 그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우리는 물질우주의 속성으로 인해 어떤 절대적인 영적 가르침이나 철학을 내놓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결코 모든 종교들을 대체할 궁극적이고 유일 절대적인 진리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항상 그 시대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고착된 마음의 상자들을 부수려고 애쓴다. 그리고 인류의 자각이 증대되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의식을 어느 정도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2원성에 빠져 있는 한 좀 높아진 의식 조차도 또 다른 마음의 상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중세의 암흑시대에서 벗어났지만, 그 때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과학이 현대인들의 삶을 지배하면서 과학은 또 다른 종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2원성이란, 자신을 육체적인 존재로만 보는 제한된 의식이 나와 너, 나와 세상, 나와 우주를 하나로 보지 못하고 둘로 보는 분리의식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여러분이 만물의 본질적인 속성을 알았을 때 그대들은 신이 저 높은 하늘에 있는 분노하는 하느님이 아님을 알게 된다. 하느님은 행복의 신이요, 기쁨의 신이며 끝없는 지복의 상태 속에 계신다. 여러분이 자신의 본성을 알았을 때 여러분 역시 그 지복에 연결된다. 그것은 참으로 나의 커다란 희망이고 기쁨이며 거대한 이상이다.

거지와 왕자의 이야기에서 자신을 거지인줄 알았던 왕자가 왕자의 신분을 되찾았을 때 얼마나 기쁠까? 인성이라는 제한된 의식 속에서 살다가 신성이라는 완전한 자유를 획득했을 때 같은 해방의 기쁨을 느낀다는 뜻의 말씀이다.

 

붓다란 무엇인가?

붓다란 스스로 각성해 있으므로 해서 모든 생명이 한 몸이라는 사실을 보는 존재, 즉 모든 생명들이 같은 근원으로부터 생겨났으며, 그것들이 상승하여 영적인 세계의 일부가 됨으로써 결국은 그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깨달은 존재다.

시간은 공간의 작용이 아니다. 시간은 자유의지의 작용이다. 왜냐하면 한 행성이 이상적으로 위치해 있어야 하는 공간 내의 그 장소에서 뒤쳐질 때, 기대했던 상태와 현재의 현실 사이에는 거리적인 간격이 생겨나며 그것이 시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시간이 자유의지의 작용이라는 말은 시간이 인간의 상상물이라는 말과 같다. 신성 안에서 시간은 정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성 안에서 모든 것은 영원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나는 붓다요 공간이다. 나는 시간을 초월해 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세상의 모든 시간을 소유한 데 반해 세상은 무한한 시간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니 곧 깨어나라. 그리고 시간을 넘어선 자리에 있겠다고 마음먹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지금이라는 것을 인식하라. 즉 내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인 것이다. 그것은 여러분이 영원한 현재로 들어가는 때이고 공간의 환영을 넘어서는 때다.

 

상승하지 못한 존재로서의 여러분은 공동창조의 능력은 발휘할 수 있지만 공간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여러분이 붓다의식을 성취하기까지는 그러하다....그러나 창조주의 어머니적인 속성은 그녀의 빛이 자아의식적인 존재들을 위한 도구가 되는 것을 허용하는데, 이때 빛은 존재들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능숙하게 펼치고 시각화한 정신적 이미지들을 물리적 상태로 수확할 수 있는 재료가 된다. 그러면 붓다의 전체 공간이나 상승하는 소용돌이의 공간에서도 소멸되지 않고 뒤처져 남겨질 수 있음을 가능케 한다.

 

'상승하는 소용돌이'란 물질우주에서 영적 우주로 진화하는 우주 에너지의 양상이다. 그런데 그 상승하는 에너지로부터 떨어져나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씀 같다. 지금까지의 지구가 그런 행성이었던 것인데, 그것이 종교에서 말하는 '타락'이었던 것이며 우주 과학적인 용어로는 '시공간연속체'라고도 하고 '공간적 스트레칭'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그런 행성적 이탈은 행성 주민들의 자유의지에 의해 발생했던 것이며, 그러나 그 결과는 시간의 끝에 도달했을 때 파멸을 초래한다고 한다. 행성 자체의 문명이 스스로를 파괴할 수도 있고 행성 밖으로부터의 요인에 의해(광자대 같은) 파괴되는 것은 자유의지가 무한정으로 허용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붓다의식의 성취에 이르면 문제는 달라진다는 것이다. 붓다의식의 어머니적인 빛은 자유의지를 능숙하게 다루면서 의식적으로 물질세계를 지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붓다의식을 Mater-Light, 즉 물질세계의 빛이라고 표현하셨다. 붓다의식은 물질세계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공간도 지배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또 그 결과 3차원 지구가 4-5차원의 지구로 체질적 변화를 일으킬 때 거대한 파괴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임계수치에 이르는 지구인들이 영적 상승, 즉 붓다의식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본성은 여러분의 실체인 진아(眞我)이고 우주의 근원적 실재에 의해 창조되었다. 즉 그것은 전체 속에 평화로이 거하는 궁극의 근원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여러분은 그 전체성 혹은 일체감을 상실한 것이며, 그 결과 2원성의 의식에 빠졌고 이런 저런 것에 대한 집착이 생겨난 것이다....궁극적인 행복, 평화, 해탈, 상승, 구원.....여러분이 무엇이라 부르든 간에 최종적인 요건은 신 내지는 우주 근원과의 완전한 융합이다. 그리고 그것은 물질우주 내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든 연연하지 않는 것이다. 절대적인 무집착을 통해서만이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물질세계에 살지만 물질에 연연하지 않는 것, 그것이 해탈인 것이다.

 

당신들이 디크리(염송)를 하거나 기도할 때만 빛을 받아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정수준에 도달한 상태에서는 밖으로부터 어떤 빛을 갈구할 것이 아니라 빛은 당신들의 내면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슴이 순수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대들 내면이 평화로워짐으로써 무거운 짐을 벗었음을 의미한다.....히말라야에는 디크리 수행도 하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사원이나 교회에 가지도 않는 초인 대사들이 있다. 심지어는 명상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정한 경지에 도달하면 그들의 일상 모두가 기도요 명상처럼 순수해지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존재들이 지구의 에너지적 균형을 잡아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존재들이 계시기 때문에 지구의 차원상승이 허락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영적인 길이 고난의 길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러한 믿음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솔직히 말하는데, 그것은 참으로 에고에서 오는 것이다. 고난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하늘의 왕국을 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제는 보다 높은 수준으로 올라서서 내면의 평화를 구현해야 한다. 내면의 평화는 그대들이 기여할 수 있는 궁극의 봉사이기도 하다. 지구상의 그리스도화된 약 1만 명의 사람들과 붓다의식화된 단 몇백 명의 사람들은 동등한 에너지로 지구를 떠바친다. 그들은 단지 지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성 지구를 변형시킬 수 있는 것이다.

몇백 명의 붓다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1만 명의 그리스도화된 사람들과 맞먹는 에너지를 발생시킨다는 뜻이다.

 

당신들의 가슴에 집중하라. 내가 그대들 각자의 심장에 배치한 평화의 불꽃을 받아들이라....그대들의 진아가 바로 그대들 안에 있는 창조자임을 알라....나는 완전한 평화와 우아일체(宇我一體)의 합일상태 속에 앉아 있다. 비록 표피적인 현상들, 즉 일그러진 형태로 나타나는 마계의 악마들을 본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너머를 보며, 삼라만상이 동일한 질료와 빛으로 주조되었음을 안다. 이 매터-라이트(Mater-Light)가 붓다의 본성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이미지들을 넘어서는 것이고, 그리스도와 하나됨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인간을 뚜어넘는 천상의 존재로만 생각지 말라는 뜻이다. 인간 각자 안에도 그리스도의 씨앗(신의 자녀)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당신들 각자는 본래 지구 너머에 있는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이 사실이 지구상의 그릇된 교사들에 의해 부정되어 왔는데, 그들은 인간이 타력에 의존해야 할 미약한 존재라거나 혹은 그 힘이 오직 한 존재를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고 믿게끔 만들었다....여러분이 오늘날 보고 있는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진정한 가르침과는 멀리 동떨어져 있다.